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버나드 로 몽고메리 (문단 편집) === 제2차 세계 대전 ===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1940년 몽고메리는 프랑스 전선의 영국원정군 지휘관으로 참전했다. 이후 후퇴하는 영국군을 보호하기위해 [[아라스 전차전|아라스 전투]]로 독일군을 저지하여 [[됭케르크 철수작전]]을 도왔다. 이후 본토로 귀환해 육군 재건에 전념했다. [[에르빈 롬멜]] 원수가 이끄는 독일 아프리카 군단은 [[이탈리아 왕국군]]이 저지른 大삽질을 메꾸기 위해 급파되어, 번개같은 작전으로 오코너 중장을 사로잡고 영국 서부 사막군을 거의 괴멸상태까지 몰아넣었다. 중동 사령관 웨이벌 대장이 인도로 전출되고 후임이 된 [[클로드 오킨렉|오킨렉]] 대장은 서부 사막군을 제8군, 일명 '사막의 쥐떼'로 재편하고 재도전, 한때 밀어붙이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다시 롬멜의 반격을 받고 닐 리치 중장이 지휘하는 8군의 전력 절반 가량을 날려먹고(가잘라 전투) [[토브룩]]까지 함락되는 타격을 입었다. 이 비상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오킨렉은 엘 알라메인까지 물러나 방어선을 구축하는 한편 닐 리치 중장을 해임하고 8군의 지휘권을 직접 잡고 롬멜의 공세를 저지하는데 성공한다(1차 [[엘 알라메인 전투]]). 그러나 오킨렉은 처칠의 무리한 공세 요구를 비현실적이라서 불가능하다고 거부했고 이에 처칠은 카이로까지 가서 오킨렉을 마구 갈구고 패배주의에 물들었다며 해임한 뒤 그 후임으로 해럴드 알렉산더 대장을 임명하고 8군 사령관으로 몽고메리 중장을 임명한다. 하지만 몽고메리 역시 처칠의 기대를 저버리고(...) 전력을 보강하고 우주방어로 일관하고 있었다. 몽고메리는 먼저 롬멜을 마구 폄하하면서 그를 칭송하는 풍조를 몰아냈고, "[[까라면 까|이제부터는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한다. 마음에 안 들면 옷을 벗으라]]"며 부대를 장악했으며, 장병들을 맹훈련시키면서 [[우주방어]]로 일관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8월 30일에 실시된 롬멜의 마지막 대공세를 저지하는데 성공하여(알렘 엘 할파 전투) 독일군의 [[이집트]] 진공 능력을 완전히 소모시켰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섣부르게 공세에 나서는 대신 처칠의 거듭된 압박에도 전력을 증강시키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그래서 처칠은 내내 몽고메리의 능력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이때 롬멜은 자신의 실책에도 몽고메리가 반격을 하지 않자 상대가 너무 소심하다고 평했다고. 하지만 아프리카 군단과 이탈리아군이 피폐해지는 보급에 시달리는 동안 몽고메리는 8군의 전력을 하루가 다르게 증강시켜 갔는데, 아프리카 군단을 지원하기 위해 투입된 독일 제27전투비행단 소속 정찰기가 시속 300마일의 속도로 8군의 병력 주변을 돌면서 그 시간을 계산해봤더니 무려 10분이나 걸렸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